노동 현안2020. 12. 14. 15:26

노동변호사가 대통령인 나라의 노동법


정상규 변호사


2018년 5월, 최저임금법의 엄청난 개악이 있었다. 개정 전에는 기본급 성격을 지니는 임금만이 최저임금 항목으로 취급됐지만, 이 법 개정으로 상여금과 식비·숙박비·교통비 등 복리후생적 임금이 최저임금 항목에 포함됐다. ‘상여금’은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장시간 노동을 시키면서도 적은 임금만을 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판례는 애초 상여금은 연장·야간·휴일에 하는 노동에 대해 할증임금을 산정하기 위한 기준임금 개념인 ‘통상임금’에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석해 왔다. 대법원은 2013년에 와서야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된다면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요건을 명확히 했다(2012다89399호 전원합의체 판결).


그런데 대법원은 위 판결에서 “상여금을 지급할 당시 재직 중인 사람에게만 지급하기로 하는 조건이 붙어 있다면 고정성이 없어 통상임금이라고 볼 수 없다”며 사용자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줬다. 노조 조직률이 낮은 우리나라에서 기업이 이런 조건을 붙여 상여금을 지급하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아 보인다. 결국 상여금은 통상임금에서는 제외되고 최저임금에는 포함되게 됐다. 이로써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지급할 여력이 있는 기업 앞에서만 최저임금 인상이 무력화됐다.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하면서도 소상공인 보호책을 갖추겠다는 공약은 간데없고, 정확히 정반대의 결과만 남았다.


이 정권에서 이뤄진 노동법 개악은 더 있다. 근로기준법은 소정근로시간을 1주간 40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제한을 두면서 이를 초과한 노동에 대해 50% 할증한 임금을 주도록 규정해 왔다. 이와 별도로 휴일에 하는 노동은 그 자체로 50% 할증한 임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했다. 두 할증제도가 목표로 하는 바는 ‘1주 단위 총 노동시간 통제’와 ‘1주 중 온전한 휴식일 확보’로 서로 다르다. 따라서 휴일에 하는 노동이 1주 40시간 제한도 넘어선다면 각각의 할증(50%+50%)이 적용돼야 한다. 이러한 ‘휴일중복할증’ 쟁점은 2018년 당시 한창 대법원에서 다퉈지고 있었다. 상당수 노동자가 휴일 연장노동을 하기에 대법원 결론에 따른 추가 임금액 수준이 수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됐다. 당시 근로기준법 규정 문언대로라면 기업도 중복할증 임금이 부담스러워 휴일에 노동자가 쉬도록 할 동인이 있었다. 노동시간을 단축하겠다는 문재인 정부 기조와도 부합했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은 2018년 3월 개정으로 ‘휴일에 하는 연장근로에 대해 한 번만 할증한 임금을 줘도 되도록 해 달라’는 재계 입장을 근로기준법에 그대로 새겼다.


그리고 최근 노동계의 반발이 없었다면 아마도 파업시 사업장 점거를 전면 제한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악까지 해냈을 태세다. 지난 9일 노조법 개정에서 사업장 전면 점거를 금지하는 기존 정부안 문구는 삭제됐다지만 사업장 내 점거 제한 규정, 비종사자의 사업장 내 노동조합활동 제한 규정이 여전히 살아남았다. 특수고용 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의 노동조합활동을 보장하라는 국제노동기구(ILO) 권고안은 가볍게 무시됐다. 비종사자 조합원은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한도 설정, 교섭대표노조 지위 결정 및 쟁의행위 찬반투표 등을 위한 조합원수 산정에서 제외돼 무늬만 조합원으로 전락했다. 기업별노조의 경우 임원이나 대의원조차 될 수 없다.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유지한 채 단체협약 유효기간 상한을 3년으로 상향함으로써 소수노조의 처지를 더 열악하게 했다. 그러면서도 파업을 위한 찬반투표에서는 전 노조의 찬반투표를 거치도록 해서 파업권 행사를 어렵게 만들었다. 노동조합할 권리는 여전히 제한적이고, 이번 개악으로 더 퇴보했다.


지난 9일에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상한을 6개월까지 가능하게 하는 근로기준법 개악도 이뤄졌다. 특정한 1주간 최대 64시간 장시간 노동이 가능하게 됐다. 재계는 일감이 많을 때는 연장근로수당이라는 할증임금을 주지 않아도 되고 일감이 없을 때는 기본급을 덜 줘도 되는 노동유연화를 달성했다. 단위기간 상한이 6개월로 늘면서 장시간 노동이 몇 개월간 지속될 가능성이 큰데도 이로 인한 건강권 침해 방지책은 갖추지 못했다.


재계는 이번 정권에서 큰 것들을 얻어갔다. 반면 노동계에 꼭 필요한 노동법 제·개정은 지지부진하다. 1년에 2천명이 넘는 산업재해 사망자가 나오는 나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진전이 없고, 플랫폼 노동자 보호를 위한 법·제도를 갖추는 것은 아직 먼 나라 이야기로 보인다. 이제 사용자들이 저임금으로 장시간 노동을 시킬 최적의 조건이 갖춰졌다. 참 이상한 나라의 노동법이다. (전문보기)


Posted by Pursued.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