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근로기준법 강의를 마치고 강의 평가를 하는 자리에서 한 (사법)연수원생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저희들이 뭔가 알고 있을 거라고 짐작하지 마십시오. 오늘 소장님 강의를 들은 연수원생들 중에서 90% 이상이 근로기준법을 오늘 이 자리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입니다."" 하종강 선생의 회고이다.
이어지는 선생의 지적. "이제 곧 판·검사·변호사들이 될 사람들인데, 그들 중에서 90% 이상이 근로기준법을 그날 그 자리에서 처음 봤다는 것입니다. 더 심각한 일은 그 이후에 노동법을 공부할 기회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포영화에 가까운 상황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배출된 법조인들이 노동법 사건을 올바르게 사회법 관점으로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법 사건을 계속 시민법 관점으로 판단하면서도 자신들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법원은 노동법이 가진 노동자 권익보호라는 기본 목적을 우선해야 하는데 기업 경쟁력 강화·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을 과도하게 옹호하는 입장을 보여 주는 판례를 내 왔다." 지난달 3일 한국노총 초청 특강에서 김지형 전 대법관이 한 말이다. 그는 이날 특강에서 노동법원의 설립을 주장했다.
그는 그 동안 법원이 노동재판에서 보여줬던 불합리성에 대해 "노동법을 민법의 아류로 해석하고 적용하려는 태도"라고 지적하며 "노동법이 노동자 권익보호와 인권보호를 위한 법으로 해석되고 적용되기 위한 방안"으로 노동법원의 설립을 강변한 것이다. 이는 노동계의 오랜 숙원이기도 하다.
민법과 달리 노동법은 운동장이 이미 기울어져 있음을 인정하고 그 전제하에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다. 노동법은 불편부당하지 않고 편파적이다. 사용자에게 불리하고 노동자에게 유리하다. 사회가 합의하여 그렇게 만들어 놓은 법이다.
하지만 한국의 법원은 이러한 노동법의 의의와 취지를 훼손하는 판결을 너무 자주 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파업으로 인한 손해배상 판결, 통상임금 재판에서 신의칙 판결, 산별노조지회의 기업별노조 전환 판결 등이 있다.
대부분의 국민이 노동자로 살아가야 하는 나라에서 노동을 교육하지 않는다. 수구세력과 족벌언론은 끊임없이 노동혐오를 조장하며 노동자가 노조총연맹을 수구세력의 논리로 비난하는 세상을 만들어 놨다. 그리고 사법은 노동의 문제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다.
jtbc 보도국장 권석천의 기자시절 칼럼 하나를 소개한다. "이들 노동사건은 대법원 구성이 왜 중요한지 보여준다." "대법관은 판사들의 승진 코스에 그쳐선 안 된다. 대법원엔 소수자와 약자, 인권, 노동에 대한 감수성을 지닌 ‘비주류’들이 필요하다." https://news.joins.com/article/20228936
권기자는 당시 이인복 대법관의 후임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조금이나마 평평하게 만들수" 있는 인물을 기대했지만 사법부의 하나회로 불리던 '민사판례연구회'의 운영진인 김재형이 임명되었다. 민판연은 우리법연구회와 대척점에 있는 사법부내 사조직이다. http://www.sisapress.com/journal/article/172833
송곳 중 구고신 소장의 대사 하나를 살펴보자. '1800년대 유럽에서 노동자 두명이 술집에서 모이는 것도 불법이던 시절' 이란 말은 19세기 유럽 여러나라에 존재했던 '단결금지법'을 뜻하는 것이다. 19세기 프랑스 형법 414조가 그 사례. 자본이 야만의 민낯을 그대로 내보이던 시절이였다.
"이처럼 업무방해죄란 애초에 노동운동을 탄압할 목적으로 탄생했다. 1864년 프랑스 형법은 일본형법에서 '위력업무방해죄'로 변경된 후 우리나라 형법까지 반영됐다"(서강대 이호중교수) 이 법은 이제 프랑스는 물론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노동권의 침해를 위해 작동하지 않는다.
우린 어떨까? 02~06년에 선고된 1심 노동형사사건 중 쟁의행위에 적용된 죄의 갯수는 7,624개인데 이 중 업무방해죄가 적용된 것이 2,304개로 30.2%를 차지하고 있다.(국가인권위원회) 몇 백년전 야만의 시대에 통용되던 법이 지금 이땅에선 여전히 노동을 탄압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ILO가 십여차례 이상 시정을 권고 하였으나 정부는 요지부동이였고 그 결과 한국은 '시민적 자유와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대표적인 국가'로 열거되고 있으며 국제노동조합총연맹은 2014년부터 5년 연속 한국을 최하인 5등급으로 분류하였다. 5등급의 의미는 '노동권이 지켜질 보장이 없는 나라'
노동권을 침해하는 업무방해죄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본다. 우리의 헌법은 단체행동권을 명시하고 있다. 단체행동권이란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경제적 지위를 '힘'을 사용하여 개선 시킬 수 있는 권리이다. 다시 말해 노동자의 투쟁(쟁의)행위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었다는 것이다.
검경은 근거 없이 파업을 불법으로 단정하며 수사에 착수하였고 관계부처는 일제히 불법파업이라는 비난을 쏟아낸다. 수구,족벌 언론도 정권의 개가 되어 노조를 물어뜯기 시작하였다. 중앙일보는 이때 희대의 오보를 터뜨린다. '파업으로 열차 멈춘 그날 어느 고교생 꿈도 멈췄다.'
이 기사는 조작,왜곡 보도이다. 입시생의 거짓말을 사실확인 없이 철도공사가 낸 자료만 보고 기사로 쓴 것이다.
하지만 당시 다른 수구언론들도 일제히 불편, 시민을 볼모로 운운 하는 기사를 쏟아 냈고 정부의 탄압과 여론의 파상공세에 철도 노조는 8일만에 파업을 중단한다. 돌아온 것은 위원장과 집행부 15명 구속, 169명 해고, 참여조합원 전원 징계, 96억 손배청구의 보복.
"이 법원은 노동법 현안을 고민함에 있어 이처럼 법해석자가 전통적 시민법질서에 익숙한 나머지 느끼는 불편함으로 인해 헌법적 현실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놓치게 되지 않을지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하고 고민하였다" 그 고민의 결과 "이 사건 각 쟁의행위들은 ... 그 위법성이 없어 처벌 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 이 판결문을 보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기억이 난다. 이런 판사도 있구나..
김동현 판사는 2010년 전교조 시국선언 사건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는데 수구언론은 사설로 김판사를 비난하기도 하였다. 당시 조병구 판사는 유죄판결을 김동현 판사는 무죄판결을 하여 같은 사건에 대한 상반된 판결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조병구는 그 조병구 맞다.)
즉, 09년 철도파업은 노조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단협안을 제시하고 노조가 거부하면 단협해지로 파업을 유도하고 이를 불법파업으로 몰아가 노조를 와해시키려는 청와대발 공작이였다는 것이다. 이 의혹은 2011년 철도공사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김진애의원에 의해 사실로 드러났다.
대법 전원합의체의 판례조차 부정하는 납득 안가는 판결들은 더러운 재판거래의 결과물이였던 것이다. 정리해보자, 2009년 철도노조의 파업은 이 나라에서 노동권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당연한 결과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노동자가 되는 사회에서 노동을 교육하지 않는다. 국립국어원은 노동이란 말을 다듬어 '근로'라고 써야 한다고 안내를 하고, 경찰은 수배전단에 범죄자의 용모를 '노동자풍' 이라고 써놓는 사회에서 어떤 다른 답을 기대할 수있 을까.
독일의 경우 사회경제교과서에서 노동교육이 차지하는 비율이 약 9%에 이른다. 초등학교 때부터 모의 노사 교섭 수업을 하며, 중고등학교에서는 노동권, 노동법, 노동계약, 단체협약 등에 대해 교육을 받는다. 실업계 학교의 경우 교과서에서 노동교육이 차지하는 비율이 20%에 달한다.
노동교육의 부재, 수구 족벌언론의 노동혐오, 자본과 정부 사법부의 노동탄압, 이 모든것이 합쳐져 노동자가 될 것이 거의 확실한 우리의 아이들이 노동자를 '덜 배운자', '거지' 로 인식하는 나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 결과는 참혹하다. 1,867억, 2017년 상반기까지(누적) 민주노총 사업장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금액이다. 그리고 배달호, 김주익, 이해남, 최강서...
이 법은 "헌법에 의한 근로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보장하여 근로조건의 유지·개선과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하고, 노동관계를 공정하게 조정하여 노동쟁의를 예방·해결" 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나 이 법은 '치안경찰법'이라는 야유가 더 잘 어울린다. 100여개 조항중 노조 처벌 조항이 40여개 사항이고 사용자 처벌 조항은 1개에 불과하다. 치안경찰법 또는 노조활동 규제법이 제대로 된 호칭일 것이다.
"정부의 경제정책이 노동에 미치는 영향에 항의하는 총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이다." (ILO, Freedom of association: Digest of decisions and principles of the Freedom of Association Committee of the Governing Body of the ILO, 1996, para. 493)
(1,000만명이 참가한 스페인 노동자들의 정부긴축재정 반대 총파업. 2010년 9월)
누차 말했지만 노동교육의 부재, 노동 혐오를 조장하는 수구 언론, 사용자 편향적인 판결을 넘어 판결을 거래하는 사법부, 노조를 범죄집단으로 여기는 검찰, 노동 혐오에 가득한 정치, 이 모든 것이 합쳐져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를 볼온시하고 권리를 가진자가 스스로의 권리를 비난하는 사회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대법원의 판례를 보면 점거행위는 쟁의행위의 한 형태이고 점거의 범위가 직장 또는 사업장시설의 일부분이고 사용자 측의 출입이나 관리지배를 배제하지 않는 병존적인 점거일때는 정당성을 인정하고 있다. (90도357, 91도383, 91다43800))
그런 행위는 지금도 불법이다. 사용자가 그렇게 치를 떨고 오래전부터 금지를 요구해온 (정당한)점거란, 파업을 하는 노동자들이 생산, 주요시설이 아닌 곳에서 사용자의 관리지배를 배제하지 않은 상태에서 모여 있는 것이다. 이것 조차 금지하는 법이 노동존중 정부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것이다.
글을 마치려 한다. 워커스에서 올린 전국 농성장 지도이다. 작년 8월 기준으로 31곳 이였다. 노동 변호사가 대통령이 되고 노동존중을 천명한 정부가 출범해도 노동자들은 여전히 굴뚝위에 매달려 있고 목에 밧줄을 건채 농성을 하고 있다.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투쟁에 의해 권리를 쟁취하여 노동법을 만들어간 서구 여러나라들과 달리 일본의 노동법을 의미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그대로 베껴와 법을 제정하고 전쟁으로 인한 극한의 이데올로기 대립 속에서 노동운동을 불온한 것으로 선전하고 탄압한 독재정권, 그리고 독재정권의 주구가 되어 노동혐오를 조장해온 수구언론, 기업가 정신 아니 최소한의 양심도 찾아볼 수 없는 파렴치한 재벌, 그런 자들이 득세하는 사회에서 노동교육은 존재할 수 없었고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마저 노동을 모르거나 판결을 거래하여 노동을 탄압하는 나라를 만들어놨다.
이제 우리는 대통령이 바뀌는 것으로, 정권을 잡는 세력이 바뀌는 것으로 노동자의 권리가 온전히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하였다. 그럼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일년여 동안 틈나는 대로 써온 이 타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같이 생각 해 보자는 의도로 시작하였다.
나라를 덮고 있는 이 노동혐오를 극복하는 길은 결국 노동자의 각성과 단결이다. 더 많이 공부하고 더 치열하게 투쟁하는, 백년전에도 답이였던 그 길뿐일 것이다. 점거 농성중인 톨게이트 노동자의 말처럼 후배들에게, 우리의 아이들에게 노동이 진정으로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고 물려줘야 하지 않을까.
긴 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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